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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엘사가 숲으로 간 까닭은?

2020-01-04


올 겨울 개봉한 겨울왕국 2는 1편과 마찬가지로 흥행 돌풍을 일으켜서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로써 겨울왕국은 1,2편이  모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겨울왕국이 애니메이션임을 고려하면 더욱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한국 관객 모두가 엘사의 마법에 걸린 듯도 하다.



<이미지 출처: 겨울왕국 2 공식 포스터>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2편의 말미에서 엘사는 아렌델 왕국의 왕위를 동생 안나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숲으로 들어가서 사는 선택을 한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 이유를 우리 '사주인'은 이해한다.

엘사는 무당(샤먼)의 사주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1편에서 엘사는 자신에게 마법의 힘이 있음을 숨기고 자신을 억누르며 살고자 한다. 

이는 무당의 사주를 타고난 사람들이 흔히 처음에 자신이 타고난 운명을 거부한 채 자신을 억누르며 살려고 시도하는 상황과 같다. 


이래서는 그녀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무당의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 그 운명을 회피하면 무병을 앓게 된다.


마침내 엘사는 더 이상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억누르며 살지 않겠노라 결심한다. 그렇게 자신을 해방하며 부른 노래 ‘Let it go’는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해방한 엘사가 왜 아렌델을 떠나야 했을까?

그 이유는 무당(샤먼)은 사람이 모여사는 마을  한복판에 들어가 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무당(샤먼)은 우리나라 만이 아니라 넓은 시베리아 전역에 존재하는데, 어느 곳에서나 그들은  이와 같은 철칙을 지키며 산다. 


무당이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지만, 그가 마을 한복판에 들어가면 마을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은 무당의 존재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당이 존재하는 지역 어느 곳에서나 무당의 거주지는 마을을 떠나 마을 밖에 있다. 대략 마을과 숲의 중간에 위치해있다. 


이와 같은 무당(샤먼)의 얘기는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왜냐 하면 사람은 누구나 조금쯤 엘사이며 샤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Let it go’에 깊이 공감한 이유는 그게 자기 얘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남과 다른 사주명식을 타고난다. 그러므로 나는 남과 다르다.

모든 사람은 은연중 자기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며, 그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남들과 다르기에 남들로부터 배척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엘사와  ‘Let it go’에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2편에서 엘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엘사만이 아니라 사람은 모두 남들이 듣지 못하는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산다.


각자가 부여받은 사주명식이 다르기에 우리 각자에게 새겨진 결은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소리를 들으며 산다. 

이것이 자기 본연의 모습이며 이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남과 다르기에, 독특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남과 다른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편안해질 수 있다.

단, 남이 듣는 소리 역시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나와 다른 남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나와 남이 조화롭게 살려면 서로 간에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엘사가 아렌델 왕국을 떠난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사람들과 건강한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쯤 엘사이며 샤먼이기에 서로 간에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일찍이 칼릴 지브란이 시로 쓴 바 있다. 


아래 시의 제목은 '결혼에 대하여'지만 '관계 맺음에 대하여'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결혼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도다.

그러니 그대들은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버리는 날에도

그대들은 함께 있을지어다.

아니, 그대들은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나 그대들의 함께함에는 떨어진 사이가 있어야 할진저.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들이 그대 사이에서 춤을 추게 할지어다.

서로서로 사랑은 하되 사랑으로 얽어매지는 말지어다.

그대 영혼과 영혼의 두 기슭 사이에 사랑으로 하여금 뛰노는 바다가 있게 할진저.

서로서로의 잔에 술을 채우되 잔 하나에서 함께 마시지는 말지어다.

서로 서로 저희 빵을 주되 같은 조각으로 먹지는 말지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그대들 하나하나 따로 있게 할지어다.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비록 한 가락에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간섭을 하지 않듯이.

그대들 진심을 바칠지어다.

그러나 서로서로 아주 내맡기지는 말지어다.

오직 위대한 <생명>의 손만이 그대들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것.

함께 서되 너무 가까이는 말지어다.

신전의 기둥은 서로 떨어져 서는 것이요,

또 참나무도 실편백나무도 서로서로의 그늘 밑에서는 자라지 못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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