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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사주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발생한 명리학적 이유

2016.12.14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영원한 TV 드라마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 비극이 발생한 역사적 맥락은 드라마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명리命理(명命의 결)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한 이유를 풀어볼 수 있다.

또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어째서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달리 보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도 아울러 살펴볼 수 있다.

영조 3대가 보여주는 命의 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일대 드라마를 펼쳐보이고 있어서,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 번씩 살펴볼 필요가 있다.

ㅇ 영조의 사주

영조의 사주에 대해서는 소위 ‘사갑술四甲戌’ 사주로 풀이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갑술년·갑술월·갑술일·갑술시 사주라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로는 모 언론사의 기사 중에 갑술甲戌, 갑술甲戌, 을해乙亥, 정해丁亥로 풀이하는 글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영조 임금에 대한 공식 기록인 행장(行狀)을 찾아보면, 숙종 20년 갑술(甲戌) 9월 13일 무인(戊寅)일에 창덕궁에서 왕을 낳았다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즉 위의 사주는 둘 다 틀린 것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진정한 앎이라고 하셨다.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영조 임금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그 사주는 다음과 같다.

갑술甲戌

갑술甲戌

무인戊寅

(갑인)(甲寅)

행장에는 시時가 나와 있지 않다. 나머지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위 사주에서 (갑인)(甲寅)시는 인터넷에 그러한 풀이가 올라 있기에 일단 잠정적으로 올려본 것이다.

혹시 영조 임금의 출생시時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시면, 필자에게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다(연락처는sajuin@sajuin.com).

영조의 사주를 보면, 연간과 월간에 쌍갑雙甲이 투출되어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갑목甲木이 어떤 기운인가? 갑목은 벽을 만나면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기운이다. 부러질지언정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쌍갑이라니…

쌍갑은 지나치게 강한 기운이어서 사주에서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

영조는 어진이 남아있는데, 그 관상부터가 ‘갑목의 인간’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인함과 고집스러움…

아무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할 것이다. 갑목의 기운 그대로 그는 부러질지언정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아들을 대할 때도 꼬장꼬장한 영조의 어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영조의 쌍갑은 술토戌土를 깔고 살지殺地에 앉아 있다.

술戌은 또 어떤 기운인가…

술戌에 해당하는 주역괘는 박剝괘다. 추상 같은 가을서리가 내릴 때 모든 나뭇잎을 잘라내버리는 기운이 박剝이다.

『오행대의』에서는 술戌을 멸滅(멸하는 것), 살殺(죽이는 것)의 의미로 보았는데 타당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술戌 위에 올라앉은 쌍갑이 영조의 연주와 월주를 이루고 있다.

연주와 월주가 발산하는 기운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두렵게 한다.

그런데 영조의 신주身主가 무토戊土다.

만물을 살찌우고 번식케 하는 무토戊土는 제왕의 결을 갖춘 사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조는 당시 다수당파였던 노론과 소수당파였던 소론·남인을 아우르며 탕평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임금이다.

하지만 강력한 기운 쌍갑이 신주의 ‘칠살七殺’이 되고 있다.

게다가 영조의 사주는 양목인 갑·갑·인甲·甲·寅과 양토인 무·술·술戊·戌·戌이 각각 칠살과 비견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주다.

아직 정확성을 검증하지 못한 갑·인甲·寅을 넣을 경우 이들은 모두 칠살에 합류하면서 더욱 극단적인 사주가 된다.

영조는 신주가 득령, 득지했으니 신약하지는 않으며 중강中强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쌍갑을 포함하고 있는 칠살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게다가 이를 극제해줄 수 있는 식상이 없으며, 설기시키면서 신주를 생조해줄 인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로 인해 영조는 간신히 버티면서(그나마 신주가 중강中强은 되므로 버티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칠살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영조의 사주는 재성도 없다.

그에 따라 뭔가 유형의 성과를 이루기 어려운 사주다.

실제로 영조는 장자가 아니었으며 천한 신분인 최무수리의 소생이었다. 왕의 아들이라 해도 일생 동안 별다른 주목받는 일 없이 조용히 살다갈 운명이었다.

그러나…

쌍갑의 엄청난 기운, 그것도 칠살의 기운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선 신주 본인이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해 찌부러들 수 있다.

또는 본인이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노력은, 그 강력한 기운을 밖으로 뻗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결국 최무수리의 소생이며 장자도 아니었던 영조는 보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를 둘도 없이 아끼던 형 경종이 영조가 올린 게장을 먹고나서 갑작스레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나서의 일이다. 이른바 ‘경종 독살설’이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영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이인좌의 입에서 “나는 그 날 이래로 게장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당시 많은 사람들이 ‘독살’이 있었다고 믿었던 것은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칠살과 비견으로 양분된 영조의 사주…

이 사주가 지닌 칠살의 기운(쌍갑을 중심으로 한 양목陽木이다)은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기에, 신주 본인이든 주변인이든 누군가 다치기 쉽다. 이 사주가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이다.

그런데 결국 그 기운이 아들을 향하고 말았다…

ㅇ 사도세자의 사주

사도세자의 사주에 대해서는 을묘乙卯, 무인戊寅, 무술戊戌, 갑자甲子로 풀이하는 글이 모 언론사 사이트에 실려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출생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분명하게 실려 있다.

“영조 11년(1735) 1월 21일 임진일에 영빈 이씨가 원자(사도세자를 말함)를 집복헌에서 낳았다.”

이 기록에 따를 경우 사도세자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을묘乙卯

무인戊寅

임진壬辰

(경술)(庚戌)

* (경술)시는 확인하지 못한 기록을 임시로 올려본 것이다.

이를 보면, 영조의 신주인 양토 무·진戊·辰이 세자에게 ‘칠살’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불확실한 (경술庚戌)시를 인정할 경우 칠살이 더욱 강력해진다.

게다가 세자의 신주인 임수壬水는 홀로 외롭다.

인월寅月에 태어난 임수인지라 월령에서부터 설기당하고 있으며, 인성의 생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셋이나 되는 강력한 식상에도 설기를 당하고 있다.

홀로 고립된 임수로서는 무·진戊·辰 칠살의 극제를 견뎌낼 재간이 없다.

강력한 상관(을乙과 묘卯)이 칠살을 극제하고 있으나 이는 동시에 칠살과 충돌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극이 잉태되었다.

이는 그대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운명을 보여준다. 정면 충돌이다.

세자의 상관이 강력함에 비해 신주가 약한 것이 문제가 된다. 신주는 자신으로부터 뻗쳐나가는 상관의 기운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아마도 세자는 자신에게서 뻗쳐나가되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기운에 스스로 당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세자는 활쏘기에 능했고, 『무예신보武藝新譜』를 편찬할 만큼 무武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면은 자신이 뿜어내는 기운을 다스리지 못해서 당황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강인해보이는 모습은 아버지 영조와 충돌을 부를 뿐이었다.

세자도 ‘목木의 인간’이다. 식신과 상관을 이루는 양목 인寅과 음목 을乙·묘卯의 음양 조화를 통해 뿜어내는 강력한 기운이 있다.

이 강한 기운으로 무토戊土(세자에게 칠살이자 아버지 영조의 신주)를 거스르려 할 때, 대로大怒한 영조는 자신의 칠살의 기운을 아들에게 폭사시킨다.

이제 아버지 영조의 쌍갑 목기木氣와 아들 세자의 식상 목기가 일대 충돌을 이루고 만다. 어느 한 쪽이 부러질 때까지…

결국 부자의 비극, 역사의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ㅇ 정조의 사주

정조 임금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 태어난 시각까지 기록되어 있다.

“왕은 영종 28년(1752) 임신 9월 22일(기묘) 축시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탄생했다.”

이에 따른 정조 임금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임신壬申

경술庚戌

기묘己卯

을축乙丑

정조 임금의 신주는 음토인 기토己土이다.

할아버지 영조의 신주가 양토인 무토戊土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된다.

음·양이 상호 화합하니 일단 할아버지 영조와 직접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사주다.

게다가 음토는 양토와 달리 무한한 인내심을 갖고 자신을 감출 줄 안다.

정조에게도 칠살이 둘이나 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음목이 칠살이며, 영조가 지닌 쌍갑 양목은 손자 정조에게는 도리어 정관正官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정조에게는 술토戌土 겁재가 있다. 강력한 기운인 겁재가 비견과 음양 조화를 이루며 뿜어내는 강한 기운으로 칠살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달리 정조는 신주가 강하다는 점도 다르다. 무엇보다 술월戌月에 태어나 득령했다.

경庚과 신申, 두 양금陽金을 갖추어서 강력한 상관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적절하게 자신의 칠살을 제어하고 있다.

정조의 사주에서는 인성이 없는 것이 흠이고, 정재正財인 임수壬水가 외롭다는 것이 또한 흠이 되고 있다.

실제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남편 사도세자보다 자신의 집안(노론)을 우선했던 사람이다. 그로 인해 정조에게도 도움보다는 부담을 주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그 자신이 강력한 기운인 겁재를 갖추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신의 칠살과 할아버지 영조의 쌍갑목이 뿜어내는 강한 기운을 견뎌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재正財 임수가 외롭다 보니 이는 군겁쟁재의 형국을 이루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정조의 사주는 유형의 성과를 이루기 어려운 사주가 되고 만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현군賢君이 비교적 이른 나이인 49세에 귀천歸天하고 말았음은 이 정재正財가 외로웠기 때문이런가?...

한국사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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